[시사매거진 한창기 기자] 20일 오전 부산 서구 남부민동 소재 한국불교조계종 보림사에서 석가모니불 와불(臥佛) 점안식이 성황리에 봉행됐다.이날 행사는 길이 8M와 높이 1.8M, 폭 3M에 달하는 부산 최대 규모의 와불을 모신 법당에서 내·외빈 및 신도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봉안식은 주지 혜광스님의 염불 독경을 시작으로 관음무, 축원무 등 여법 의식으로 이어졌다. 특히 ‘천수경’ 중 신묘장구대다라니경과 동시에 어울어진 ‘바라춤(천수바라)’은 참석자들의 탄식을 자아내 행사의 백미를 장식하기도 했다. 권공·예배 후 와
[시사매거진310호] 한국 전통문화 수도를 자처하는 전라북도 ‘전주(全州)’는 고대 한국사의 뿌리이며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고향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는 호남인 저항의 상징인 ‘전주한옥마을’이 위치한 까닭에 역사적 의의와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서울의 북촌이나 경주의 한옥마을, 안동의 한옥마을과 달리 도심 내 대규모로 발달해 있는 전주한옥마을은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거대 도시로 전통의 ‘경기전(慶基殿)’, ‘풍남문(豐南門)’ 등과 함께 역사·문화·유적·관광지로 세인들의 특별한
[시사매거진 309호] 제주도(濟州島)는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섬으로써 천혜의 자연경관이 수려한 세계적 생태, 휴양관광지다. 본섬인 제주도를 포함해 9개의 유인도와 55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사람이 살고 있는 우도를 비롯해 상추자도, 하추자도, 비양도, 횡간도, 추포도, 가파도, 마라도 등은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제주 본섬의 남북 간 거리는 약 31㎞고, 동서 간 거리는 약 73㎞로 가로놓인 형태다. 또한 이곳은 서쪽으로 인접한 중국과 그 위쪽 러시아는 물론 남서쪽으로는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 연결된
[시사매거진308호] 수도 서울은 조선시대 한양으로 많은 역사적 흔적과 문화유산이 남아있는 곳이다. 특히 정치적으로나 사회적, 문화적으로 그 위상과 권위를 엿볼 수 있는 조선 5대 궁궐이 대표적이다. 정궁이자 법궁인 경복궁(景福宮)을 비롯하여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경희궁(慶熙宮), 덕수궁(德壽宮)으로 연결되는 이들 궁궐은 그 가치와 의미가 매우 독보적이다. 여기에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은 물론 지금까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칠궁(七宮)’은 그 역사적 지류에 깊이를 더한다.본래 칠궁은 1725년 숙종(肅宗)의
[시사매거진307호]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저동 호반에 위치한 경포대(鏡浦臺)는 지방유형문화재에서 보물로 승격된 역사적 정치·문화 인물의 보고(寶庫)이며 산실(産室)이다. 고려시대인 1326년 충숙왕 때 관동존무사 박숙정(朴淑貞)이 세운 경포대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동인 수장인 초당 허엽과 강릉 5문장인 악록 허성, 하곡 허봉, 난설헌 허초희, 교산 허균 그리고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와 천재 문인 매월당 김시습이 거했던 고택(古宅)과 외가(外家) 등이 자리한다.그중 무반 가문의 혈통을 이어 서울 성균관 북쪽 지역에서 태어나 5
금산다락원 청소년수련관은 지난 11일 관내 청소년 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산‧제원‧부리면 일원의 문화유산을 찾는 2차 청소년 주간 ‘금산 나들이~’답사 기행을 시행했다. 이번 답사는 금산의 역사를 이해하고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지난 11월 20일부터 이달 6일까지 관내 4개 학교에서 진행된 1차 청소년 주간 ‘go back 금산속으로’ 특강의 연장선으로 추진됐다.참여 학생은 2팀으로 나눠 금산시민대 한연숙 강사 및 이해정 마을교사의 지도하에 △이치대첩지, 진산향교, 진산성당, 고경명선생비, 조헌선생사당(표충사) △
[시사매거진306호]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은 우리 문학사에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허씨5문장이 세거지다. 조선 중기인 1546년(명종1) 때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에 진출한 ‘초당 허엽(許曄, 1517~1580)’은 이후 승정원 도승지로 발탁되어 중요 요직을 두루 섭렵하며 동인(東人) 세력의 거두가 되었다.특히 양천허씨 명문가를 이루는 초당 허엽과 첫째 정실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악록 허성(許筬, 1548~1612)을 비롯하여 둘째 계실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하곡 허봉(許篈, 1551~1588), 난설헌 허초희(許楚姬, 1
-백화산성 정비사업부지 내 추정지역서 건물지 3동 및 축대 흔적 찾아--용문 암막새 기와 등 발견, 왕실과 연관된 건물의 권위 보여줘- 조선시대 임금이 도교 국가제사를 지내던 ‘태일전’의 흔적이 충남 태안 백화산에서 발견됐다. 태안 백화산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발굴이라는 평가다.태안군은 백화산 백화산성 정비사업부지 내 태일전 터 추정지역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태일전’ 건물지 3동 및 축대의 흔적이 발견되고 용문 암막새 등 다량의 기와와 자기가 출토됐다고 11일 밝혔다.5일 백화산성 태일전 터 발굴 현장을 둘러보는 가
[시사매거진305호] 과거 한양은 수도인 도성(都城)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개성, 남쪽으로 수원, 서쪽으로 강화, 동쪽으로 광주 등 4방위 방어체계와 군사시설을 두었다. 그중 광주시에 위치한 남한산성(南漢山城)은 고양시에 위치한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궁성을 방어하는 최대의 난공불락 산성 요새로 긴요하게 사용되었다.특히 ‘남한산성(南漢山城)’의 남쪽 방위에 위치한 ‘성남(城南)’은 안산시, 과천시 등과 더불어 서울 3대 위성도시 중 가장 비약적 발전을 이룬 곳으로 급부상했다. ‘분당테크노밸리’와 ‘판교테크노밸리’에 IT·BT·C
[시사매거진304호]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은 예로부터 비옥한 삶의 터전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통의 요지며 관문이다. 그로 인해 고대(古代) 문화의 중심지로 급부상하며 토착 지배 세력의 위상을 상징하는 정치적 무대가 되었다. 특히 익산의 만경강 일대 청동기 문화는 일찍부터 중국과 한반도 서북부지역의 선진문화 유입을 촉진했다.B.C. 3세기 말, 중국 유방이 한(漢)나라를 건설한 후 대립 관계에 있던 연(燕)나라 사람 위만이 (고)조선으로 귀화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준왕(準王)의 권력을 찬탈해 (위만)조선을 통치했다. 이때 위만에게 패
제주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제주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다.‘관덕(觀德)’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에서 따온 말로,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이 누정 건물은 『탐라지』에 의하면 조선 세종 30년(1448) 안무사 신숙청이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다고 하며, 성종 11년(1480) 목사 양찬이 고친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 보수한 것으로 원래의 건축 수법은 17세기 전후의 것으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扶餘 軍守里 金銅菩薩立像)은 1936년 충청남도 부여 군수리 백제 절터를 조사할 때 발견된 금동보살이다.머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관(冠)을 쓰고 있고, 얼굴 좌우로 두꺼운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깊이 있는 내면의 웃음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백제인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신체는 두꺼운 옷에 싸여 있으나 비교적 양감이 있고 당당한 모습이다. 배에서 X자형으로 교차되는 옷은 발목 부분까지 길게 늘어져 새의 날개깃처럼 양쪽으로 퍼진 모습이며, 발목까지 내려온 또다른 옷
충청남도 아산시 현충사에 보관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의 유물들이다.이순신(1545∼1598)장군은 선조 9년(1576) 병과에 급제하여, 47세 때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그는 왜군의 침략을 예견하고 군비를 비축하고 거북선을 제작하였다. 마침내 이듬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그는 적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전황을 면밀히 분석하여 한산도, 옥포, 명량 해전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노량해전(1598)에서 적의 유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그의 숭고한 정신과 통솔력은 임진왜란 중 가장 뛰어난 무장으로서 민족사에 길이
송림사는 진흥왕 5년(544) 명관(明觀)이 중국에서 가져온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절로, 여기에는 우리 나라에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벽돌로 만든 송림사 오층전탑(보물)이 있다. 1959년 이 탑을 수리하기 위해 해체하면서 탑 안에 있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그 중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漆谷 松林寺 五層塼塔 舍利莊嚴具)는 2층 탑신(塔身) 구형(龜形) 석함(石函)(현재 송림사에 보관) 속에서 발견되었다.Ο 1층 탑신에서는 나무와 돌 그리고 동으로 만든 불상이 각각 2구씩 나왔고,Ο 2층에서는 신라의 사리 장엄
사천왕석주는 운문사 작압전(鵲鴨殿)안에 모셔진 청도 운문사 석조여래좌상의 좌우에 각각 2기씩 모두 4개가 돌기둥처럼 배치되어 있다. 원래의 위치는 아니고, 이곳에 세워진 벽돌탑의 1층 탑신 몸돌 4면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으며, 머리 뒷쪽으로 둥근 광채를 띤 채 악귀를 발로 밟고 있다.사천왕은 부처를 모시는 단의 사방을 지키기 위해 두는 방위신(方位神)의 성격을 띠는데, 동쪽이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이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이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이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이 4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들어둔 창고이다.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 석빙고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오래된 것이다.동·서로 뻗은 긴 구조로, 서쪽에 문을 두었으며 계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진 바닥이 보인다. 가운데에는 물이 빠지는 길을 두고 동쪽에 구멍을 만들어, 석빙고 밖의 작은 개울로 물이 빠지도록 하였다. 환기 구멍을 뚫어 놓았던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는 어
대흥사 응진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자장(慈藏)이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여래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라 한다.탑의 형태는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신라의 일반형 석탑이다. 아래·위층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처마가 두껍고 윗면은 경쾌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정상에는 머리장식으로 몸돌로 보일만큼 큰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위에 복발(覆鉢:엎어놓은
향로란 절에서 의식을 행하거나 불단 위에 올려놓고 향을 피우는데 사용하는 공양구이다. 특히 완형(盌形)의 몸체 아래 나팔형으로 벌어져 원반형의 받침을 지닌 것을 향완이라 하였다.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은 높이 37㎝, 지름 51㎝로 고려시대 향완 가운데 큰 작품에 속한다. 몸통 표면 전체에 가는 은실로 무늬가 입사되었다. 입에 있는 넓은 테인 전의 표면에는 연꽃 덩굴무늬가 있고, 가장자리 면에는 번개무늬가 있다. 몸통 중앙에 서로 마주보는 4곳에 이중의 원을 돌리고, 안에는 굵게 한자씩 범자를 새기고, 그 주위를 돌아가며 여의두문을
은 8폭 병풍 으로서 1844년(헌종10)조선조 제24대 왕인 憲宗(1827~1849, 재위 1834~1849)이 孝定王后와 嘉禮를 치른 후 진하장면을 그린 궁중기록화이다. 8세에 즉위한 헌종은 정비였던 孝顯王后金氏(1828~1843)가 죽자 이듬해 10월 18일 홍재룡의 딸을 계비 효정왕후로 책봉하였으며, 21일 親迎禮와 同牢宴을 거행하였다.은 총 8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첩에는 藝文館提學趙秉龜(1801~1845)가 지어올린 ‘嘉禮後陳賀敎是時頒敎文’이 쓰여 있다.제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서 보관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불교경전과 유명한 승려들의 저술, 시문집 등이 새겨진 목판이다.해인사에 있는 목판은 모두 54종 2,835판인데 이 중 28종 2,725판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26종 110판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해인사 고려각판은 국가기관인 대장도감에서 새긴 해인사 대장경판과는 달리 사찰이나 지방관청에서 새긴 것이며, 현재 해인사 대장경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寺刊版殿)에 보관되어 있다.이 목판들은 금강경·화엄경 등의 대승불교 경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