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빚은 있어도 센터 증액은 없다?

(시사매거진239호=안수지 기자) 지난 1992년부터 시작된 ‘가정선교상담센터’를 운영하던 경험을 토대로 가정과 개인의 상처받은 심리를 치료하는 전몽월(全夢月·65) 목사 겸 이사장은 응급실과 회복실을 겸비한 ‘주님의 교회’와 ‘(사)나누리/나누리선교비전센터’를 운영하며 국내에서 대내외적으로 적극적이고 헌신적이며 공명정대한 투명성으로 열정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의 소신은 ‘오늘만이 내 시간이기에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전몽월 이사장이 여성으로서 세계적이고 국제적이며, 다양한 사업과 거국적인 선교활동을 추진하게 된 데는 그 역시 부녀자로 뒤늦게 신학에 입문해 다양한 가정사를 경험하고 시련을 맞으며 절대적인 신앙에 의지한 전력에 기인한다. (사진_윤재호 기자)

‘부르심’을 받고 ‘가정 상담과 치유’에 관심을 두다
현재 ‘(사)나누리와 나누리선교비전센터’를 운영하는 전몽월 이사장은 현대사회에서 상처받은 가정 구성원을 위해 응급실로써 ‘가정상담선교센터’를 시작, 회복실로써는 ‘주님의 교회’에 시무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추구하고 왔다. 아울러 국내는 물론 해외 선교봉사를 주도하며 나누리푸드뱅크와 빈민구제, 사랑의 콘서트와 건강가정 지원사업, 나누리 의정부지회 경로잔치와 동대문지회 나누리지역아동센터 지원을 맡아 추진 지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외 사역에서도 가나 직업학교, 해외 결연아동 지원, 남아공탁아소 운영지원과 빈민구제, 사랑의 집짓기,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와 치료비 지원, 우물 파주기, 움프말랑카 양·염소 분양하기와 빈민구제 사업 추진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여성으로서 이토록 세계적이고 국제적이며, 다양한 사업과 거국적인 선교활동을 추진하게 된 데는 그 역시 부녀자로 뒤늦게 신학에 입문해 다양한 가정사를 경험하고 시련을 맞으며 절대적인 신앙에 의지한 전력에 기인한다.
1953년 산수유의 고장인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에서 출생한 그녀는 ‘달이 무지개를 타고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왔다’는 태몽에 근거해 ‘몽월(夢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어릴 적 간간히 교회에 갔던 기억 외에 특별한 신앙생활 내력이 전무한 그녀가 목회자가 된 것은 1973년경 남편 직장동료의 전도와 권유로 교회에 다니면서부터다.
그리고 1992년 백석신학에서 신학공부를 마친 후 국내외 다양한 선교활동에 참여하며 비로소 목회자로서 본격적인 사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인생의 파란을 거치며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사 안수 받은 지 14년의 세월이다. 더불어 영적 체험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인지하고 1992년 ‘가정상담선교센터(패밀리 카운슬러 미션센터)’를 개설했다. 이곳에서는 상담과 치유를 목적으로 한 신앙의 특별 응급실 역할을 수행한다.
더욱 ‘임상목회 상담학’을 전공한 전몽월 이사장은 상처받은 가정 구성원의 상담이 이뤄진 후 개인 각자의 일상과 본교로 돌려보내던 데서 진일보해 완전한 치유가 되지 않을 경우 회복실 역할로 활용할 수 있도록 6년 후인 1998년에 ‘주님의 교회’를 설립했다. 일종의 특수목적형 교회인 것이다.
 

본격적으로 신학공부를 시작하던 1992년경 국내 선교봉사와 분리해 해외 빈민구제사업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전몽월 이사장은 나누리푸드뱅크와 빈민구제, 사랑의 콘서트와 건강가정 지원사업, 나누리정부지회 경로잔치와 지역아동센터 지원을 도맡아 추진하고 있다. (출처_(사)나누리선교비전센터 제공)

국내 선교봉사사업 & 해외 빈민구제사업

평신도로 신앙에 열심을 내던 전몽월 이사장은 1990년도부터 ‘사랑의 병원 선교’라는 기관에 협력해서 시작된 해외 선교는 1992년 새롭게 가정상담선교센타를 열고서도 계속되었다.

처음 ‘가정상담선교센터’를 운영할 당시에는 국내 복지와 선교가 같이 병행 되었다. 국내 복지로써 소년소녀 가장 돕기와 파산면책 가정 돕기가 가장 최우선이었다. 정상적인 가정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특히 파산면책 가정을 돕기 위해 법률·행정 지원을 추진해 차상위계층을 구제했고, 감면 신청을 요청함은 물론 원금만 갚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도 발 벗고 나섰다. 이어 채권으로 넘어가기 전에 ‘소액 탕감법’을 적용해 지원하고, 사채업자에게는 이자 없이 원금만 받도록 설득했다. 이어 부녀자 상담과 홀부모 자녀, 외조모 자녀 돕기를 실시했다.

이후 베트남 의료선교의 경험을 살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러시아 본국의 자국민교회를 지원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2년경 1.5~2세대를 돕는 미국 ‘뉴비전’ 단체에서 부름을 받아 가려고 하던 과정에서 일어난다. 베트남과 이웃한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시 내 공항에 들어선 전몽월 이사장은 그곳에서 천막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특히 다카시 노지에서 빈곤하게 사는 그들을 보고 삶의 극한과 불우함에 연민을 느낀다.

당시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시에 거주하는 0.1% 상류층 사람들은 빌딩 내 욕실 수도꼭지에도 순금을 입힐 만큼 부유했으나 나머지 99.9%의 국민은 돌이 없어 물을 여과시킬 장치도 없이 오염된 식수를 사용하고 있었고, 벽돌을 깨는 작업을 통해 하루 1불(1달러, 956원 정도)을 벌어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전몽월 이사장은 너무나 처참한 그들의 삶과, 반면 소수가 누리고 사는 그 모습을 보고 내면에서 분노하고 있는 그 때 우레와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고 한다. “너는 그걸 보고 분노 하느냐, 나는 전 세계를 보고 분노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이후 해외로 나가려던 계획을 멈추고 한국에 머물며 해외선교를 지원하고 독려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때부터 비로소 적극적인 지원과 공세를 열정적으로 쏟게 된다.

해외 사역에서도 가나 직업학교, 해외 결연아동 지원, 남아공탁아소 운영지원과 빈민구제, 사랑의 집짓기, 어린이 치료비 지원, 우물 파주기, 움프말랑카 양·염소 분양하기와 빈민구제 사업 추진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출처_(사)나누리선교비전센터 제공)

봇물과 마중물, 해외선교와 빈민구제사역
(사)나누리와 나누리선교비전센터 전몽월 이사장은 2009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케이프타운 주 내 집단빈민촌인 컬리처를 방문하게 된다. 케이프타운에서 불과 30~40km 되는 지점에 있는 곳으로 인구수가 대략 100만 명 정도다. 현지인도 출입하기 꺼려하는 우범지역으로 주민 75% 이상이 에이즈 보균자이다. 대부분의 아동들은 부모가 에이즈로 사망해 한부모 혹은 조부모 가정, 먼 친척집 등에서 더부살이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무엇보다 그곳 컬리처에서는 비위생적인 화장실과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1.5평의 공간에 3~4명 이상의 가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양철 같이 낡고 허물어지는 환경에서 사람답게 살기는 매우 열악함을 보고 2010년 시작된 ‘사랑의 집짓기’는 현재 수도 케이프타운 내에 위치한 걸인촌 세틀멘트 지역에는 103채의 새 집이 쾌적한 환경과 조망권을 자랑하며 2014년 12월에 완공되었다. 네덜란드 정부 봉사단체가 1억 원이 넘는 예산을 기부해 ‘나누리빌리지’를 건설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결과이며, 고려대학 AMP봉사단에서 101채, (주)에스제이아이앤씨 30채, 겨자씨교회 40채, 포항중앙교회 100채 등 많은 분들의 참여로 490채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생업을 위해 일하러 나간 부모를 대신해 어린이를 돌볼 탁아시설이 들어섰다. 현재 17개소 탁아소가 건립된 상태다. 이와 더불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155명의 컬리처 지역 어린이에게 장학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그중 세계 100위 대학에 들어가는 UCT 대학의 졸업생도 배출되었다.  
남아공 움프말랑카에는 초지대를 구입해 개간하고 소 18마리와 2015년부터 나누리에서 후원한 양과 염소 200마리로 1차, 2차 분양을 진행했다. 더불어 부엌과 화장실이 없는 누더기 판자촌을 개량해 부엌을 만들고 ‘밥퍼사역’을 펼쳐 1주 600명씩 4주에 걸쳐 2,400명에게 음식을 공급하고 있다.
아프리카 가나 쿠마시에서는 실로암 학교를 개설하고 본관의 교실, 식당, 체육관과 화장실, 정화조, 상하수도 시설 등을 마련되어 250여 명의 어린이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도서관과 특별강의실을 추가로 개설했다. 또한 체육관과 운동장에서 태권도 등을 익힐 수 있으며  컴퓨터와 자동차 정비, 미용과 양재 등 단계적인 직업 기술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해가고 있다, 교육함은 물론 ‘우물 파주기’ 사업을 추진해 학교 내에 2개, 마을에 2개의 우물을 기증했다. 
그 외 가나 빈민아동 심장병수술 의료지원, 인도네시아 중부 자와 지역에 결연아동 지원, 캄보디아 깜뽕짬, 깜뽕스프, 씨엠립 지역 구제사업, 러시아 모스크바 지역과 볼리비아 등지에 결연아동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전몽월 이사장은 ‘오늘만이 내 시간이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으로 오늘도 선교와 봉사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기를 버리고 비움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겸허(謙虛)’함을 소신과 원칙으로 삼으며 국내 복지와 해외 빈민구제 사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또한 ‘사랑의 빚은 있어도 센터 증액은 없다’는 자부심을 내세워 공명정대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 지구상에 실현하고 있다.

(사진_윤재호 기자)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